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등장인물 (문단 편집) === 야율이호 === 거란의 황자. 황제 야율덕광이 화북에서 진나라와 전면전을 치르는 동안 수도인 상경 임황부에서 국무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가 약 6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 북상해오자 기겁해 대응에 나선다. 승상 슐률노속과 같이 중원에 나가지 않은 군사들 전부를 싹싹 긁어모으고, 야율덕광이 지원보낸 군단까지 합쳐 4만에 달하는 대군을 편성.[* 후일 연운 16주 너머 개봉에 원정중인 거란군이 5만으로 밝혀진다. 퇴각손실을 합쳐도 현 거란 총력의 4할에 달하는 셈.] 부여진 너머에서 고려와 야전을 치른다. 1만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마술과 높은 사기를 보여주며 우세를 점하고, 이에 자신이 미래의 거란 대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나, 후방을 들이친 고려의 보병 위주 별동대에 의해 태후가 포로로 잡히고 이에 발맞춰 전면적 총공세를 가해온 고려에 의해 결국 군이 무너지고 패퇴한다. 승상 슐률노속이 후방의 고려보군을 막으라고 미리 빼준 덕에 야율이호는 겨우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연우가 부석을 깎고 날붙이를 꽂아 흘려보내서 제대로 도하도 못했다.], 오천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상경 수비는 암울했다. 게다가 중원에서 싸우던 거란의 본군에 본토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 야율덕광은 사망, 종군하던 조카 야율올욕이 군대를 장악하고 거란황제를 자칭한다. 이에 제위를 얻기 위해서 고려에 원조를 청하면서, 사실상 만주 지역의 이전 발해 영토는 거의 다 회복을 포기하게 된다. 고려에서는 1만명의 포로 중 절반은 풀어주어 연운의 거란군에게 수비는 가능하도록 해 내전이 길어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태후 슐률평 역시 거란 제실의 최고어른이기에 한참을 더 쥐고 있을 예정. 결국 이 때 넘긴 요동과 발해의 강역은 끝까지 되찾지 못했다고 언급된다. 약 30년 후에 왕무가 죽자, 거란이 다시 군사를 끌고 공격했지만 연우가 직접 전장에 나와서 야전을 벌일 준비를 하자, 결국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고려에게 당하고 거란 제국의 중원 정복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요나라 사서에는 고려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길게 나와서 미래 교차검증의 훌륭한 사료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